케이트의 아트마켓 26


NFT와 저작인격권




글. 케이트 리(Kate K. Lee)

2021.08.18

- 작가와 작품이 연결선 상에 있다는 개념인 '저작인격권'

- NFT제작 후 원작을 파기하는 깜짝 이벤트 유행

- 원작 훼손에 따른 저작인격권 침해 주의 지적도


뱅크시(Banksy),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 AP, 2004. Photo: FaceMePLS via Flickr/Creative Commons.

지난 2018년 10월 소더비(Sotheby's) 런던 경매에서 영국의 대표적 거리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 시리즈 중 2006년 회화작품이 약 100만 파운드(한화 16억 원)에 판매되었다. 그런데 경매사가 낙찰을 확인하며 망치를 내려치자마자 작품이 기계 소리를 내며 파쇄되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순간 현장에서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관중들과 경매 회사 관계자들 모두 갑작스러운 일에 크게 놀라고 당황해하는 장면이 언론에서 대서특필 되었다. 이 같은 해프닝의 여파로 아트 마켓에서도 화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후 뱅크시 측이 미디어에 올린 영상에 따르면, 작가는 이 그림을 친구에게 선물하면서 나중에 혹시 작품이 경매에 나올 가능성을 대비해 미리 프레임 내부에 파쇄장치를 설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치의 오작동으로 그림의 절반만 파쇄된 채로 마무리된 작품을 뱅크시는 '사랑은 쓰레기통에 있다(Love is in the Bin)'라고 새로 명명했다.

예술 작품의 초고가 행진을 풍자하기 위해 기획했던 이 기행은 오히려 작품 가격이 최소 50% 이상 상승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낙찰자가 파쇄된 작품을 그대로 인수하기로 하였고, 현재 이 작품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미술관(Staatsgalerie Stuttgart)에 영구 임대 형식으로 전시되고 있다.

NFT 제작 후 원작 파기 이벤트


뱅크시(Banksy), 멍청이들(Morons), 2006. Photo: eddiedangerous via Flickr/Creative Commons.

지난 3월 미국 뉴욕에서도 또 다른 뱅크시 작품을 파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암호화폐 회사 인젝티브 프로토콜(Injective Protocol)이 주관하여 컬렉티브 '번트 뱅크시(Burnt Banksy)'가 뱅크시의 실크스크린 판화 '멍청이들(Morons)'을 디지털 복제하고 그 NFT를 만든 후, 원작을 불태우는 과정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생중계한 것이다.

이들은 원작을 파기한 이유에 대해 원작과 NFT가 동시에 존재할 경우 우선적 가치가 원작에 있기 때문에 원작을 없앰으로써 변형이 불가능한 NFT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진정한 작품으로 남게 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또, 뱅크시의 작품을 선택한 것은 2018년 그의 소더비 경매 이벤트를 보고 이번 일을 착안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예술 작품 NFT가 인기를 끌면서 원작을 불태우는 등의 이벤트로 주목을 끌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작품의 소유주는 자신의 자산인 예술 작품을 사용 또는 수익, 처분할 수 있으므로 작품을 불태우는 등 파기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예술 작품의 소유권자가 자신이 소유한 작품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는 없다. 이전에 소개한 일이 있는 저작인격권에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3월 3일자 케이트의 아트마켓 2편 참조.)

창작자의 고유한 권한인 저작인격권으로 작가는 작품과 관련해 작가의 명예와 평판에 해가 될 수 있는 왜곡이나 수정, 또는 훼손이 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다시 말해 작가의 허락 없이 소유권자 마음대로 작품을 훼손한다면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 동의 없는 원작 파기로 저작인격권 침해 주의


도밍고 자파타(Domingo Zapata)의 '판다(Panda)' 시리즈 중 한 작품을 태우는 장면. Photo: No Credit via Page Six.

지난 4월 미국의 기업가 브록 피어스(Brock Pierce)와 파올로 잠폴리(Paolo Zampolli)가 도밍고 자파타(Domingo Zapata)의 '판다(Panda)' 시리즈 중 한 작품을 불태우는 장면을 공개했다. 자파타는 스페인 출신으로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시대 아티스트로 그의 '판다' 회화 시리즈는 미화 약 35,000에서 60,000 달러(한화 4,000만- 6,800만 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피어스와 잠폴리는 작품을 불태우는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 파일과 연계하여 NFT를 제작했다. 이들은 '판다'를 불태우기 전 작가인 자파타의 동의를 구했으며, 작가는 이 NFT를 자선 경매에 출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작가가 작품을 태워서 파기하고 그에 관련한 NFT를 만드는 것에 사전에 동의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위의 번트 뱅크시의 사례는 다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뱅크시 측은 번트 뱅크시 일에 관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최 측은 뱅크시가 원작 파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뱅크시 측에 코멘트를 요청했지만 아직 응답을 받지 못한 상태이다.

만일 뱅크시의 허락 없이 그의 작품을 디지털 복제했다면 이는 무단 복제에 의한 저작재산권 침해가 될 수 있다. 또, 작가 동의 없이 원작을 파기했다면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뱅크시 측이 문제 제기를 한다면 번트 뱅크시는 민.형사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적 권리는 예술 창작 활동을 진작시키고 창작자의 독창적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예술 작품의 가치를 변형할 수 없는 형식의 증명서로 만들기 이전에 저작권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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