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의 아트마켓 34


워홀인 듯 워홀 아닌

- 작품의 감정 (3)



글. 케이트 리(Kate K. Lee)

2021.10.13

- 진작(眞作) 판정 후 뒤집히기도 하는 감정 결과

- 감정 기관, 줄 잇는 소송과 막대한 비용으로 문 닫기도

불만족스러운 감정 결과로 인한 법정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 기관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있고, 해체 수순을 밟는 관련 위원회 사례도 늘고 있다.

앤디 워홀(Andy Warhol), 자화상(Self-Portrait), Tate Modern, London, 1986. Photo: Jim Linwood via Flickr/Creative Commons.

아티스트의 예술 작품을 진작(眞作)으로 인정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기관들의 인증을 받는다는 것은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명이 된다. 이렇다 보니 감정 결과에 따라 운명이 갈리게 되는 작품의 소장자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감정 결과에 쉽게 승복하지 않고 법정 다툼으로 시비를 가리기도 한다.

이중으로 부정된 자화상

지난 2012년 미국의 앤디 워홀 재단(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이 작품 감정 위원회를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Andy Warhol) 사후, 시각 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재단을 마련하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설립된 앤디 워홀 재단은 산하에 작품 감정 위원회를 두고 의뢰받은 워홀의 작품의 진위성을 감정해 왔었다. 재단이 밝힌 위원회 폐쇄의 이유는 위원회의 감정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잇따른 소송 비용이 막대해 재단 재정 운용에 무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조 사이먼이 소장 중인 작품과 색상이 다른 작품. 앤디 워홀(Andy Warhol), 자화상(초록색; Self-Portrait; Green), Museum Brandhorst, Munich, Germany, 1964. Photo: dennis crowley via Flickr/Creative Commons.

감정 위원회 해체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송은 지난 2007년 미국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영화제작자인 조 사이먼(Joe Simon-Whelan)이 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으로 당시 세간의 이목을 크게 끌었다. 1989년 사이먼은 크리스티(Christie's) 경매 회사와 영국의 유명 딜러의 손을 거친 워홀의 실크스크린 '자화상(빨간색; Self-Portrait; Red, 1964)'을 구매했다.

2001년 작품의 가치가 10 배 이상 올라 200-300만 파운드(한화 약 31-47억 원)를 호가하자 사이먼은 재판매를 시도했다. 그는 판매 전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앤디 워홀 재단의 감정 위원회에 자신의 작품이 워홀의 전집 도록에 수록되도록 요청했다. 이 작품은 최초 작가에게서 구입하여 워홀의 서명 인장과 함께 이미 위원회의 진작 인정을 받은 이력이 있어 사이먼은 작품이 도록에 기재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위원회의 결정은 의외였다. 작품이 위작이라는 감정 결과와 함께 '거부' 도장을 찍어 돌려보낸 것이다. 뜻밖의 결과에 사이먼은 작품을 위원회에 다시 제출했지만 '거부' 도장이 한 번 더 찍혀 돌아왔다. 지난호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작품의 최종 감정을 할 수 있는 권위 기관들은 위작이 다시 아트 마켓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부' 표시 도장을 찍는 등 여러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10월 6일자 케이트의 아트마켓 33편 참조).

하루아침에 위작이 되어 버린 워홀의 얼굴


앤디 워홀(Andy Warhol), 자화상(Self-Portrait), SFMOMA, San Francisco, US, 1967. Photo: Sean Davis via Flickr/Creative Commons.

사실 사이먼이 소유한 실크스크린은 1970년 워홀이 생전에 인증한 전집 도록의 표지에 등장했던 작품이었다. 이 때문에 위작 판정은 많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결국 사이먼은 위원회와 재단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워홀 작품의 상당수를 보유하고 있는 재단이 투명하지 않은 감정 과정으로 진작의 수를 한정해 작품의 가격을 높이려 한다는 것이 소송의 주지였다. 하지만 재판이 3년 넘게 지속되면서 결국 사이먼은 소송을 중도 포기했다. 천문학적 재원과 유명 로펌을 대동하고 재판을 진행해 온 재단에 대응하기에는 드는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 비용의 문제는 소송을 제기한 측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재단 측의 입장 역시 사이먼과의 소송에 지불한 비용만 미화 700만 달러(한화 약 80억 원)인 것으로 비춰 볼 때 매년 이어지는 많은 재판은 재정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재단은 감정 위원회를 해산하고 더 이상 작품의 감정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감정 기관의 감정 결과로 작품의 운명이 뒤집히기도 하고 바로잡히기도 하면서 많은 논란이 불거져 왔다. 끊임없는 법정 다툼으로 감정 의뢰를 받지 않기로 한 유명 아티스트들의 감정 기관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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