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의 아트마켓 42


문화유산의 주인 찾기, 반환 - (3)



글. 케이트 리(Kate K. Lee)

2021.12.08

- 반환을 위한 전 세계적 합의 도출

- 구속력 없는 합의와 그 한계

- 반환의 현실적 걸림돌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탈당한 문화유산의 반환을 위한 세계적 합의체가 만들어진 후 2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는 선언이 갖는 한계 극복을 위해 각국의 실질적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 2015. Photo: Junichi Yamashita via Flickr/Creative Commons.


지난주 칼럼에서 2016년 12월 미국에서 제정된 '홀로코스트 희생 미술품 회복법(Holocaust Expropriated Art Recovery Act)'을 소개했다. (12월 1일자 케이트의 아트마켓 41 참조.) 이 법은 나치에게 강탈당하거나 착복당한 예술 작품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의도로 제정되었지만, 앞서 소개한 피사로 작품처럼 여러 가지 문제로 혜택을 누리기 어려워진 경우도 있다.

반환을 위한 글로벌 합의 '워싱턴 원칙'

2차 대전 피해자들의 문화유산 회복을 돕는 노력은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이어져왔다. 1998년의 '워싱턴 원칙(Washington Principles on Nazi-Confiscated Art)' 합의는 44개 참여국들이 나치에 빼앗긴 예술 작품을 원소유주에게 반환하는데 협조한다는 결의와 세부사항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원칙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실제 이행은 각국 정부의 노력에 달려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Neue Galerie, New York, 1907. Photo: Aavindraa via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마련된 각국의 2차 대전 피해 문화유산 반환에 대한 법률 체제 정비도 각각 차이를 보인다. 설령 해당 법령이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복잡한 정치.사회적 문제들로 인해 실제로 작품을 되찾는 사례는 소수에 그치고 있다. 유명한 대가의 작품이라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여론 형성이 되어 반환에 힘을 얻는 일도 생기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의 반환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사례이다. 이를 소재 삼아 실화에 바탕한 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일례가 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유행한 장식적 미술 사조인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로 여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대가이다. 오스트리아는 워싱턴 원칙에 합의하고 내부적으로 관련 법제도 마련했었다. 하지만 국가의 보물로 여기는 클림트의 작품을 반환하는데 협조적이지 않아 원소유자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길고 어려운 법정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현재 소유자의 협조 없이 이루어지기 힘든 반환

워싱턴 원칙이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의 대의와 대조적인 사례들이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18세기 도시 풍경화의 대가 이탈리아의 베르나르도 벨로토(Bernardo Bellotto)의 '피르나 장터(The Marketplace at Pirna)'는 미국의 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Houston, MFAH)이 소장.전시하고 있다.


베르나르도 벨로토(Bernardo Bellotto), 피르나 장터(The Marketplace at Pirna), c. 1764. Photo: NearEMPTiness via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이 작품은 유태인 탄압을 피해 독일에서 스위스로 피난 간 독일 유태인 사업가가 소유하던 것이다. 나치가 유태인 자산을 몰수하는 탓에 경제적으로 곤궁해진 사업가는 히틀러의 아트 딜러에게 벨로토의 작품을 포함해 몇몇 작품을 헐값에 팔게 되었다. 전후 독일 정부가 나치가 주도한 경제적 탄압에 의한 자산의 매도 역시 강매로 인정하면서 사업가는 헐값에 넘긴 다른 2점의 작품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피르나 장터'는 1952년 미국의 컬렉터가 구입해서 1961년 휴스턴 미술관에 기증했다. 원소유주인 사업가 가족이 나중에 작품의 소재를 찾아내 반환 요청을 했지만 미술관 측은 거절했다. 미술관의 주장에 의하면 원소유자가 자발적으로 작품을 판매했고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므로 더 이상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론의 비난과 함께 법조계 인사들과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모뉴먼츠 맨 재단(Monuments Men Foundation) 등이 나서 미술관 측 논리의 오점과 법적 문제 등을 지적했지만 미술관은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1월 24일자 케이트의 아트마켓 40 참조.) 결국 원소유주 가족들이 지난달 10월 미술관을 상대로 미국에서 작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휴스턴 미술관은 미국 미술관으로서 유태인 탄압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유럽 국가의 가치관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는 반인류적 강탈로 손에 넣게 된 작품이라도 세계 곳곳에서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전시하겠다는 이들의 주장은 규모면에서 세계 12번째인 미술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예술 작품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의심케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에 대해 과연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재판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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