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아트마켓 44
도난 후 되찾은 작품의 주인은? - (1)
글. 케이트 리
2021.12.21
- 도난당한 그림의 주인은
- 현 소장자와 원소유주 간의 소유권 분쟁
- 준거법에 따라 달라지는 소유권자
도난당한 작품이 오랜 세월이 지나 회수되거나 발견되는 경우들이 가끔 발생한다. 원주인과 현재 소유자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법의 적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곤 한다.
구겐하임(Guggenheim)에서 사라진 샤갈(Chagall)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가축 상인(Le Marchand de bestiaux), 1912. Photo: Matt Dertinger via Flickr/Creative Commons.
지난 1960년대 후반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의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가축 상인(Le Marchand de bestiaux)'이 사라졌다. 미술관 측은 정기적 재고 관리 기간에 작품의 도난 사실을 인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작품이 암시장으로 영영 숨어버릴 것을 걱정한 미술관 측은 1970년에 이르러 뒤늦게 경찰에 이런 사실을 알리고 신고했다.
그 후 종적을 알 수 없었던 이 작품은 당시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미국인 레이철 루벨(Rachel Lubell)이 1985년 경매회사 소더비(Sotheby's)에 경매를 위해 감정을 의뢰하면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도난 작품을 알아본 소더비 직원이 미술관 측에 이를 알렸고, 미술관과 현 소유주 간의 소유권 분쟁이 시작되었다. 역으로 추적된 작품의 소장 이력을 통해 당시 도난 사건이 미술관의 우편물실에서 근무하던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났지만 그를 검거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난당한 후 오랜 시간을 지나 회수하게 된 작품들은 대부분 현재 소유하고 있는 소장자와 원소유주 간의 소유권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작품 도난 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몇 번의 주인이 바뀌고 난 뒤, 도난 작품인 줄 모른 채 제값을 치르고 구매한 선의의 현 소유자와 잃어버린 자신의 작품을 되찾고자 하는 원소유주의 입장이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각 국가의 법적 접근은 모두 다르다. 원소유주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법체계가 있는 반면 선의의 소유주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법체계도 있으며, 각기 그 정도와 제한도 모두 다르다.
샤갈 작품의 사례에서는 원소유주의 입장을 가장 옹호하는 뉴욕 법률에 따라 재판부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손을 들어줬다. 최종심까지 이어진 오랜 분쟁 끝에 재판이 채 끝나기 전 양측의 합의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재판부는 미술관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했다.
원소유주 vs. 현 소장자
아르키메데스 팰림프세스트(Archimedes Palimpsest). Photo: Matthew Kon via Wikimedia Commons.
예술 작품 거래의 특성상 국경을 넘나드는 경우가 많고 장기간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국가에서의 거래를 거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런 이유로 도난 작품의 소유권 분쟁은 곧 어떤 법률이 재판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준거법이 되는가에 따라 결과가 극도로 달라지곤 한다.
같은 뉴욕에서 진행된 재판이라 해도 사건에 따라 다른 법체계가 준거법이 되어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의 천재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공학자, 천문학자, 그리고 발명가인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of Syracuse)의 논문이 실린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는 아르키메데스와 여러 학자들의 글이 담긴 모음집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
원래 쓰여 있던 글을 지우고 재활용하는 양피지로 만들어진 까닭에 오랜 세월을 거치며 아르키메데스의 글을 지우고 위에 그리스 기도서 등 다른 글이 쓰였다. 현재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이전에 기록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중요한 문서가 1920년대 초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 이스탄불)의 그리스 정교회 도서관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 생각에 잠긴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Thoughtful),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Germany, c. 1620. Photo: The Archimedes Project via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당시 한 프랑스 공무원이 이를 손에 넣게 되어 비밀리에 보관하다가 사망하자 1998년 그의 딸이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 뉴욕에 경매를 위탁하면서 그 소재가 드러났다. 이후 이어진 그리스 정교회 측과의 소유권 분쟁에서 뉴욕 연방 법원은 팰림프세스트가 80여 년 동안 프랑스에서 자국인에 의해 보관되어온 점을 근거로 뉴욕법이 아닌 프랑스법을 준거법으로 결정했다.
프랑스법에 따르면 도난이나 분실 이후 3년이 지나면 선의로 물건을 취득한 사람이 소유권을 갖는다. 이 같은 원리로 법원은 현 소유자와 크리스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팰림프세스트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화 200만 달러(한화 약 24억 원)에 판매되었다. 낙찰자는 '미스터 B(Mr. B)'로만 알려졌는데, 그의 변호사에 의하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사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는 아니지만, 하이테크 산업에 종사하는 미국인"이라고 한다.
한국은 도난이나 유실품에 대해 원소유주의 반환청구권을 도난 또는 잃어버린 날로부터 2년간 인정한다. 2년이 지나면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나라마다 도난품 관련 법률의 적용이 다르다 보니 여러 나라를 거친 도난 작품의 경우 어떤 법을 적용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주인이 달라지고 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4&oid=108&aid=0003014356